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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문화PD] 문화피디 20기에 이어 21기까지 섭렵한 김규현피디를 만나다
문화피디 20기에 이은 21기까지 활동한 김규현피디의 활동 21기에는 어떤 활동을 하였나? 직접 발로뛰며 활동한 그의 활동은? 2024년의 김규현 피디의 계획은? [대본] 안녕하십니까? 숏터뷰의 지원동 피디입니다. 오늘은 김규현 피디님을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문화피디 기에 이어 문화피디 기에 참여한 김규현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먼저 이번 문화피디 기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제작과정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이번 문화피디 기 활동 중에는 지난번에 참여하지 못했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를 참여할 수 있었는데 해당 촬영이 저에겐 굉장히 감명 깊은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인천 살아서 인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인천에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네. 인천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 저도 피디님의 영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미술관 이름은 배달이 있다 스페이스 작은 미술관이었는데요. 약 년 전의 여인숙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여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었어요. 년 전의 건물을 리모델링했더니 정말 대단하네요. 년이나 된 건물이었던 것에 한 번 놀라고 미술관이 굉장히 고유하고 예뻐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술관 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나무 냄새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놀러 갈 것 같아요. 네 저도 김규현 피디님의 영상 덕분에 작은 미술관 꼭 가보고 싶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으로는 영상 제작하면서 가장 알리고 싶었던 신기술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회차에 진행했던 가상현실 스포츠 센터가 생각나요. 어떤 점 때문일까요? 이곳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시설 이용이 가능하지만 주로 장애인분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양궁사격과 같이 실외에서 체험하기 힘든 활동들을 VR과 XR 등 다양한 디지털기기들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공간이었어요. 안에서 체험하시던 분들의 얼굴이 굉장히 즐거워 보였는데 디지털 기술이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구나라는 걸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던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김규현 피디님의 회차 영상을 보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규현 피디님은 문화피디 기를 하면서 느낀 점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요? 문화피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경인 지역에 위치한 여러 시설이나 장소에 들러 그곳의 관계자분들 그리고 이용하시는 시민분들을 촬영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 피디가 아닌 일반 영상 제작자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일들을 문화 정보원의 이름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어요. 네 저도 개인촬영을 하면는 많은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문화피디를 하면서 김규현 피디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많이 공감이 됩니다. 네 김규현 피디님께서는 이번 문화 피디 활동을 통해 년에 혹시 계획하고 계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저는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 보니 년에도 꾸준히 영상을 제작할 예정이고요. 저희 문화 피디 활동을 도와주시는 여러 매니저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화피디 기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청해보고 싶습니다. 김규현 피디님의 년도에도 문화피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들어봤습니다. 이것으로 숏터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김규현 피디님 함께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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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문화PD] 문화PD가 전하는 문화PD의 이야기
챕터 1. 문화피디 소개 챕터 2. 문화피디 인터뷰 이번년도 문화PD 콘텐츠를 제작함에 있어 가장 인상 깊었던 촬영지 또는 콘텐츠를 소개해주세요. 문화PD 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 또는 촬영 속 비하인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내년에 문화 활동을 하신다면 담고 싶은 콘텐츠 또는 촬영 컨셉이 있으신가요? [대본] 다양한 지역에서 디지털 문화 콘텐츠를 담는 문화PD 오늘은 디지털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이를 담는 문화 피디 분을 소개하려 하는데요 문화PD가 담은 베스트 촬영지부터 촬영하면서 느꼈던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들 이번 편에서는 여러분들께 촬영 속 이야기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문화PD 기에서 최연소 PD로 활동하고 있는 홍준서입니다 제가 제작한 영상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콘텐츠는 돌담 시리즈라고 하는 총 삼편의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지금 현재 제작 중인 회차 영상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이 회차 영상에는 제가 직접 돌담축제 현장을 찾아가서 그것을 촬영하기도 하고 현장을 촬영한 사진들로 온라인 전시회를 개최해서 주변의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돌챙이 활동을 하고 계신 분과 직접 온라인 화상 인터뷰까지 하면서 여러 가지 많은 내용들을 담은 영상이라서 가장 인상적인 그런 콘텐츠인 것 같습니다 돌담시리즈를 제작하게 된 것은 지역 간담회가 열렸을 때 한국문화정보원 관계자 분들 그리고 문화PD 기 운영을 담당하시는 분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이렇게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주만의 특별한 문화 그런 것들을 담을 수가 있어가지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내년에 만약 문화피디 활동을 하게 된다면 약간 좀 데이터 신기술 관련된 여러 장소 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장소들은 제주에는 한정적이다보니 좀더 제주의 문화와 관련된 뭔가 디지털로 전환하고 그런 것들을 좀 촬영 해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문화PD란 성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처음 이 문화PD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공문 협조 요청 이런 것들도 작성을 해야 되고 계획서도 작성해야 되고 혼자서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하다 보니까 어려움도 많았고 첫 영상을 지금 돌아왔을 때는 많이 부족한 점들이 있는데요 그러나 점차 회차를 거듭하면서 이제 점점 영상 편집 실력 같은 것들 점점 영상 편집실력 같은 것들도 늘리고 여러 가지 영상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다 보니 문화 피디 활동이 저에게는 성장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화피디 활동은 영상을 전문적으로 편집하지 않으시더라도 여러 가지 멘토들과의 피드백 이런 것들을 통해서 좀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기 때문에 영상에 관심 있고 이런 문화디지털 신기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문화PD 기의 활동에도 지원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문화PD가 소개하는 문화PD 올해 디지털 콘텐츠 문화를 재해석하면서 겪었던 자기만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촬영을 해서 느꼈 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여러분들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기획부터 촬영 그리고 제작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쳐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전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문화피디 활동은 계속되니 여러분이 도문화 피디로 기대해주세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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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문화PD] 한국문화정보원 문화피디 21기 후기, 문지혜 PD 인터뷰
영상을 잘 만들고 싶다면 꼭 도전해봐야할 한국문화정보원 문화PD! 영상을 이제 막 시작해서 걱정이 된다구요? 그래도 괜찮아요. 좋은 영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요. [대본] 이프랜드 관우PD님 오셨어요? 저를 인터뷰하러 오셨다 들었습니다! 문화PD가 얻그제 발대식을 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영상 촬영 중이네요. 문화PD를 하면서 느낀 것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며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Q. 지혜 피디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문화정보원 문화피디 21기 문지혜입니다. 저는 전통과 문화를 좋아하고, 파이널 컷만 좀 끄적여본 일반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문화피디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피디보다는 문화라는 단어를 보고 아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거다 하고 지원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쉽게 생각했던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원 내용에 보니 자기소개를 영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하고, 온라인 면접도 보고.. 아,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는데 붙었더라고요. 영상에 대해 잘 몰라도 할 수 있도록 매니저님들이 많이 도와주시고, 영상교육, 저작권 교육, 영상 기획에 대한 교육을 해주셨던 게 영상 경험이 없는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Q. 저도 활동하면서 배워가는 것도 많다고 느꼈던 문화피디였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문화피디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 제작 과정이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든 영상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에 있는 메타 망원경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현재는 볼 수 없는 옛 건축물을 메타 망원경을 통해 보여주는 기술인데요. 문화피디로서 첫 영상이라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전통과 문화에 대한 정보 전달 만큼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성스럽게 영상으로 담아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갔습니다. 첫 달에 다행히 우수작으로 뽑혔는데 그걸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 3회차까지 전통문화와 연관된 주제로 영상을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과정 중에 좋았던 점은 한국 문화 정보원의 문화피디라는 이름으로 박물관 학예사님이나 회사 대표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그 내용을 영상에 넣음으로 더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관우 님 왜 수염을 달았어요? 어 그렇네 수염이 있네 있는 줄 몰랐어요 잘 따라오고 계시나요? 열심히 따라오고 계시네 우와 예쁜데 찾았어요 저 춤추는거 샀어요 영상으로 잘 담아주세요 어 근데 저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까 되게 뻘쭘해보여요 박수라도 치셔야하는거 아니에요? 익숙하지 않아서 박수가..이건가 Q.지혜 피디님은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지 되게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어 오셨던 것 같아요 그럼 지금까지 만든 영상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디지털 신기술은 무엇인가요? 4회차 때 약자 프렌들리를 이끄는 디지털 신기술이라는 주제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기술에 대한 영상을 찍었습니다. 진짜 시각장애인분을 섭외해서 온라인 쇼핑 보조 어플을 체험해 보는 영상이었는데요. 코로나 시기에 과일이랑 신발조차도 온라인으로 사는 일이 많아졌잖아요. 하지만 시각장애인분들은 온라인으로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하면 하루 이상이 걸리기도 해요.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AI인공지능을 통해 많은 상품의 시각데이터를 텍스트로 읽은 다음에 챗GPT처럼 물어보는 질문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 주거든요. 영상을 찍기 위해 저도 사용해 보니 이런 기능이 시각장애인이 아니고 비장애인에게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샴푸를 사고 싶은데 검색했을 때 상품이 너무 많으면 누가 좀 골라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들지 않나요? 그럴 때 이 기술을 사용하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기술이 약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번 영상을 끝으로 문화 피디가 끝나잖아요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계속해 왔다가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는 활동이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매달 영상을 한 개씩 혼자 만들고 벌써 6개의 영상을 만들어 냈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고요 하지만 이제 끝났으니 내년에는 어떤 활동을 해야할까하는 설렘과 걱정도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지원하고 싶어요. 같이 활동하는 문화 피디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매 회차 동일한 주제로 하는데 와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았지? 어떻게 이렇게 콘텐츠를 풀어냈지?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영상들 속에서 회차가 끝나면 우수작을 뽑는데 거기에 뽑히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좋은 영상이란 어떤 걸까 생각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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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문화PD]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마법사 태준이 궁수 종욱이를 다시 만났다
이종욱님의 문화피디 21기로써의 활동 인터뷰 영상 입니다 [대본] [태훈과 인터뷰 후 시작] 태준: 태훈이 녀석 아직도 사극놀이에 진심이구만.. 안본사이 몸이 더 좋아졌어 전사들은 원래 저렇게 몸이 좋나 그럼 나도 이 세계 최고의 호크아이였던 종욱이를 만나러 가야겠어 이동 태준: 종욱이가 항상 이쯤에서 있었는데 종욱: 여어~ 태준: 종욱아 여전히 멀리서도 잘 보는구나 우리팀 궁수 실력 죽지않았네ㅎㅎ 종욱: 나야 뭐 백발백중이던 실력을 안녹슬게 하려고 매일같이 수련하고 있어 그런데 무슨일이야? 태준: 후훗 수련을 하고있었다면 잘됐네 마왕이 다시 나타나서 대현자님의 어명이 떨어졌어. 다시 뭉쳐서 물리치고 최고의 문화피디를 뽑는다고 하더라고! 종욱: 이거 재밌겠는걸? 조금 더 들려줘봐 태준: 좋아 그전에 미션을 해야하는데 바로 시작할게 우리 문화피디를 하면서 제일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 종욱: 흠.. 나는 최근에 새로운 웹드라마 형태로 국립중앙박물관 영상을 촬영했는데, 그게 가장 재밌었던 것 같아! 박물관 덕후인 남자 주인공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개팅을 하며, 여자 주인공도 박물관에 나오는 VR과 미디어 아트를 체험하며 박물관에 빠지게 되는 내용인데, 촬영을 하면서 너무 재밌더라고 그리고 친구 역할로 나도 출연해서 처음으로 발연기를 해보았지 태준: 오..그거 재밌었겠네ㅎㅎ 영상 기다래고 있을게 ㅎㅎ 그리고 너 영상을 보니까 항상 미모의 여성분이 나오던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주변에 미모의 여성분들이 항상 있는거야? 종욱: 그건 다 배우분을 섭외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사실 나는 제작비를 다 투자해서 영상을 찍다보니 남는게 없더라고 ㅠㅠ 원래 영상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된 배우분들인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나는 영상의 퀄리티에는 외모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미모의 여성분들을 섭외했지 결국 우리가 열심히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으니깐 그걸 생각하면서 만들게 됐어! 국립중앙박물관편에는 잘생긴 남자 배우도 나오니깐 기대해달라구!! 태준: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 맞는말이네 훗,,ㅎ 그럼 다음 잘생긴 남자 배우가 나오는 영상도 기대하겠어~! 이제 마지막으로 다음에 우리가 또 같이 모이게 된다면 문화피디에서 어떤 팀작업을 해보고싶어?? 종욱: 사실 이번 문화PD에 많은 참여를 하지 못했어, 원래 하던 영상일이 갑자기 일이 많아져서 참여를 하고 싶어서 참여를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컨텐츠가 굉장히 많은데, 우리 팀으로 하게 되면 나는 알쓸신잡 같이 한 지역에 여행을 가서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고 나중에는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하는 콘텐츠를 하는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서로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고, 그 이야기에 대해서 토론하는게 항상 재미있더라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다 ㅎㅎ 태준: 역시 최고의 호크아이 종욱이 너 답다..! 이제 우리 다시 동료로서 마왕을 물리치러가자~! 지금 선희, 태훈이도 기다리고있어 종욱: 그리운 이름들이네.. ㅎ 그럼 난 마지막으로 암흑속 수호자 영석이만 데러오면 되겠네 한번 가볼까~ (한쪽으로 나감)
관리자
조회수: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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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문화PD] 버터뷰 ep1 :: 나에게 문화PD란?
문화정보원에서 하는 문화PD란 도대체 뭘까? [대본] 1. 안녕하세요 본인의 외모를 10점 만점에.. 몇 # 대학교맵 안녕하세요~ 문화PD 이유빈이라고 합니다 점수는 대략 10점 정도 생각하고 있고, 현재 PD 지망 대학생입니다~ (발랄한 느낌과 ,카메라 아이콘) 까마귀.. (아-아 방금 질문은 죄송합니다. 문화PD 하시면서 힘든 순간이 어느때 였을까요? # 헬스장 V 솔직히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구요 정말 수우우우우~ 많은 고비 고비가 있었지만! 책임감 하나로 허들을 넘어냈던 것 같네요. (해당 녹음할 때 숨을 헐떡이면서 운동하는 느낌으로 문장 사이 사이 버퍼링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문화PD 영상을 만드실 때 행복 했을때는 언제였나요? 용산 나들이라는 영상을 만들고, PD님들께 악수 요청이 막 들어오고 # 컴퓨터실 V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 스테이지 V 스스로한테 좀 박한 편이라 아직도 어리둥절하긴 한데,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그러면 용산 영상을 제작할때 많이 힘드셨나요? # 남산타워 V 그럼요! 사실 만들면서 제일 힘들었던 영상이에요. 당시에 촬영 시간도 촉박했고, 인터뷰이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 거절씬 다행히 결과물이 좋은 평가를 들어서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 행복함 이모티콘 (문화PD 하면서 본인한테 도움된 점은 어떤걸까요? 역시 돈! 돈을 해결해주셨구요, # 부자맵 3기수에 걸쳐 쌓은 포트폴리오가 PD라는 꿈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 더 만들어보고 싶은 영상이나 콘텐츠는 어떤걸까요? 다른 PD님들의 영상을 보면서, 저도 좋은 장비를 이용해서 영화스러운 비쥬얼을 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지금보다 높은 퀄리티의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보는 게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차기 문화PD분들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전쟁터 같은 경쟁과(강조) 그리고 자본이 필요하시다면 고민 말고 지원하세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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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천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나무
[대본]나레이션: 다들 충청도에서 오래된 것들 찾아보셨나요?나레이션: 서점을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저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책이 왜 좋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생각나는 게 있다면 책에서 나는 향기가 참 좋았어요.종이에서 느껴지는 나무의 냄새, 그게 지금도 떠오릅니다.저는 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레이션: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역 금산,이곳에는 천년고찰로 유명한 보석사가 있습니다.보석사는 신라시절 조구대사가 창건한 절로 초입에 자리한 전나무 숲이 매력적인 곳입니다.이곳 대웅전은 충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요.경내를 돌아 옆 문으로 나오니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은행나무가 보였습니다.나레이션: 나무는 무언가를 기념하듯 다양한 글씨와 색깔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현장음: 나무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진짜 범상치 않은 나무라는 게 보자마자 딱 느껴집니다.인터뷰: 보석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이 되있고 높이 40m 둘레 10여 m로 12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라 헌강왕 12년, 886년에 조구대사와 다섯 제자가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게 됩니다. 그 은행나무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하나로 뭉쳐져서 자라온 것이 지금의 은행나무가 되어 있습니다.은행나무에는 신묘한 힘이 있어 1592년 임진왜란과 1950년 625 또 큰 가뭄이 걸렸을 때 울었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나레이션: 10월 말 이곳에서는 보석사 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가올 목신제를 앞두고 사람들의 소원을 나무에 거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어요.위기를 알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잇는 나무, 나무와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습니다.1000년의 세월을 지닌 이 나무는 놀랍게도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아니었습니다.현장음: 저는 원래 금산에 있는 보석사 은행나무가 오래된 은행나무인 줄 알고 그걸 찾아가고 있었는데 금산문화원장님께서 요광리 은행나무라고 훨씬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그 은행나무를 찾아가고 있습니다.아 이거구나 와~와 진짜 크다인터뷰: 요광리 은행나무는 추부면의 마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최고의 오래된 은행나무로써 유서가 깊은 나무입니다.높이가 24m 둘레가 13m 또 나이는 1400년 이상 추정이 되고, 나무 중간 부분은 수십 년 전에 벼락으로 잘라졌고 지금 둥치에서 나온 가지들이 원목을 이루고서 크고 있습니다.현장음: 와~ 한 지역에 이런 나무가 또 있다니?나레이션: 1400년 가까운 수명으로 추정되는 요광리 은행나무,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요광리 은행나무를 영험한 나무로 여기고 있었습니다.매년 10월이면 요광리 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립니다.나무를 둘러싼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천년의 세월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네요.사람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진 나무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갑니다.나무의 수명은 어떻게 결정될까요?수분, 토양,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은행나무는 천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나무의 냄새를 따라 찾아온 금산,이곳에서 저는 알지 못했던 나무의 시간을 알게 되었습니다.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고 변화하는 세상 속, 나무의 시간은 늘 우리 곁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임재운
조회수: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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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1490년에 쓰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
[대본]더빙-창윤)여러분. 저희 이번 영상 주제는 뭘로 하면 좋을까요?더빙-정은)그동안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 했으니 이번엔 아날로그 어때요?더빙-재운)사실 충청도에는 가치 있는 오래된 것들이 많죠.더빙-예나)오. 그럼 그걸 주제로 해볼까요?더빙-동익)재밌겠는데요?! 찬성합니다!!!나레이션)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가 이곳, 대전 시립 박물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박물관 가장 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는데요.빛바랜 편지 위에 빼곡히 적힌 한글 고어가 인상적이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다행히 QR코드를 통해 현대식으로 번역된 한글 편지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함께 들어보실까요?더빙-나신걸)안부를 끝이 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님과 아기 모시고 잘 계시오.나레이션)수백 년 전 아내에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서러움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편지라니.요즘 이야기로 치면, 회사의 지침으로 강원도 발령 가면서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푸념하는 직장인의 카톡 메시지인 걸까요?해당 유물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인터뷰 음성)안정 나씨의 한글 편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역에서 출토된 한글 편지입니다. 안정 나씨 나신걸이 부인인 신창맹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나레이션)해당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는 무엇인가요?인터뷰 음성)1443년 세종대왕 때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된 것은 1446년인데요.그리고 한 오십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회덕 지방 지금의 대전광역시까지 한글이 널리 전파되고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이 됩니다.나레이션)한글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요소가 있다는데요.인터뷰 음성)처음에는 바르게 우리가 편지 쓰는 식으로 적다가 나중에는 위쪽에 적다가 아래쪽에 적다가 아니면 거꾸로 뒤집어서 빈 공간에 쓴다든지 하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나레이션)안정 나씨 묘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은 어떤 것이 있나요?인터뷰 음성)명기나 복식과 같은 14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명기는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이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쓰는 일상 용기를 자그만 형태로 만들어서 같이 껴묻거리로 매장한 것이고요. 같이 출제된 복식 중에 치마나 바지라든지 철릭 같은 것은 당대 복식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나레이션)가장 오래된 무언가를 상상할 때, 저는 막연히 그것이 나와는 아주 먼 것, 아주 다른 것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전 유성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 속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 같은 것은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다른 바 없었습니다.500여 년 전 한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치는, 수백 년을 지나도 변치 않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더빙-예나)여기까지 저의 주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였습니다!더빙-동익)와. 충청도에 저런 것이 있었군요.더빙-정은)500여 년 전 가족의 사랑이 담긴 편지라니 감동적이에요!더빙-재운)다음 주제도 정말 기대되네요. ㅎㅎ
이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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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제주 민간설화 설문대할망 -죽음편
[대본] 앞에서는 설문대 할망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요 설화라는게 탄생이 있다면? 죽음도 있는거겠죠? 지금 저는 그래서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곳 돌문화공원에 나와있습니다 제주 돌문화공원 위치 :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교래자연휴양림 운영시간 : 09:00~18:00 (월요일 휴무) 연락처 : 064-710-7733 주소 : http://www.jeju.go.kr/jejustonepark/index.htm 사람들이 제주도하면 원래부터 우리나라 영토였던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어떻게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12세기 조선시대때 우리나라 영토에 편입이 된거에요 그래서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있었었는데 흔히들 들어보셨을거에요 탐라국이라고 하죠 탐라국 그게 원래는 독립된 섬나라였었던게 바로 이 제주도였습니다 그래서 설문대할망 같은 재밌는 건국신화도 있는거죠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데요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내용은 설문대할망의 결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문대할망과 돌문화공원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해주실 분을 한 분 모셔봤는데요 저는 돌문화공원 안에 있는 설문대할망 전시관이랑 오백장군 갤러리, 그리고 야외전시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려요 돌문화공원은 곶자왈에 있는 공원인데요 돌을 소재로해서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보시다시피 건물도 되게 낮은데요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높이도 최대한 낮추고 자연스럽게 배치하도록 의도된 공원이기도 하구요 제주도 형성과정을 볼 수 있는 돌박물관과 여러가지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오백장군 갤러리 제주 돌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2코스, 3코스도 마련되어있습니다 지금 얘기들어보니까 설문대할망이랑도 관련이 많이 있는거 같은데 돌문화공원이랑 설문대할망은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요? 돌문화공원 자체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테마로해서 만들어진 공원인데요 이곳에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과 관련된 여러가지 장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슬프지만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들을 한번 둘러 보면 좋지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이럴게 아니고 나가서 한번 얘기를 들어볼 수 있도록 할까요?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두 가지 전설중 첫번째인 물장오리 관련 전설입니다 물장오리는 한라산에 있는 연못인데요 설문대할망은 자신의 큰 키를 실험하고자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는데요, 처음 용연에 갔을때는 본인의 발등에만 (물이) 닿았고 홍리물에서는 무릎에 닿았는데요 한껏 기고만장해진 설문대 할망은 한라산 물장오리로 가게 되었는데요 물장오리 바닥 없음 주의! 이곳이 밑이 없는 연못인지도 모르고 (물에) 들어간 설문대 할망은 영영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중 첫번째 입니다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하는 죽솥을 형상화한 연못입니다 설문대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아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워낙 가족이 많다보니 가난한 삶을 살았고 가뜩이나 흉년이 겹치는 바람에 설문대할망이 자식들에게 사냥을 해서 양식을 구해오라하고 본인은 죽솥에서 자식들을 먹일 죽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설문대할망은 죽솥에 빠져 죽게 되었구요 그 사실을 모르는 오백장군은 돌아와서 죽을... 맛있게 먹게 되었는데 맛있게 죽을 먹다가 막내가 뼈다귀를 발견하게 됩니다 뼈다귀가 어머니의 뼈임을 직감한 막내는 슬퍼하면서 차귀도로 달려가게 되었는데요 그 안에서 울며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리고 나머지 형들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역시 바위가 되어버렸는데 지금의 오백기암이 바로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했다시피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한 죽솥이구요 그 주변을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석상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실제 오백장군이 돌이 되었다는 기암들은 한라산 영실에서 보실 수가 있구요 지금 이 돌들은 그 기암들을 석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돌문화공원 내에 산재되어있는 형상물들을 보면 설문대할망의 모성애와 어머니를 잃은 자식들의 슬픔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문화PD님께서 전달해 주시겠습니다 이렇게 설문대할망과 제주돌문화공원에 대해서 알아보게 됐는데요 저는 여행지에 대한 설화나 역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게되면은 그곳이(여행지가) 조금 더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경향이 생기더라구요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돌도 많이 있으니까 제주돌문화공원에 방문 하셔서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관람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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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제주 민간설화 설문대할망 -탄생편
[대본]안녕하세요문화PD 양지환 입니다저희가 오늘은 산방산에 찾아 왔는데요산방산은 서남쪽에 위치한 아주 예쁜 절벽을 이루는 산이에요여기는 오름은 아니고 약간 절벽처럼 이렇게 이루어져 있어 가지고설화가 있는데 그 설화와 산방굴사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함께 가시죠저희가 이제 산방산에 도착을 했습니다산방산 안내도는 여기 앞에 있는데요함께 가보시죠여기 현 위치에 있는보니까 좀 경로가 좀 많아요절 들이 되게 많고맨 끝에 산방굴사가 있는 것 같아요저희는 쭉 올라가서 산방굴사까지 가보도록 할게요근데 굉장히 계단이 많아요한번 보여주시죠처음에 산방산에 들어오면 이렇게 보문사라고 있는데이쪽으로 올라가면 산방굴사가 나온다는데요산방굴사는 선녀와 관련된 설화가 있는데요저희가 한번 올라가서 그쪽 산방굴사를 찍으면서그 설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릴께요사실 이런 거대한 산방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는데요바로 설문대할망이 산방산을 만든 이야기예요옛날 제주도에는 아주 키가 큰 설문대할망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요할머니는 키가 너무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누우면 발이 바다에 풍덩 빠질 정도였대요할머니가 어떤 일로 굉장히 화가 나서한라산 꼭대기를 손으로 퍼다가 휙 하고 던졌는데그것이 제주도 끝자락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고 해요산방산이 백록담 뚜껑인 거죠지름을 재보니 백록담과 산방산이딱 맞아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습니다네 안녕하세요저희가 두 번째로 온 이 장소는 바로 알뜨르 비행장이라는 곳입니다저희가 원래는 용머리 해안을 가려고 했으나그쪽이 지금 만조상태라서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통제가 됐어요그래서 지금 여기 보이시는 알뜨르 비행장에 저희가 도착을 했습니다여기 알뜨르 비행장은이렇게 지금 옛날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죠제주도의 아픈 역사들그런 역사들이 담긴 곳이에요다크 투어리즘이란 일제강점기시대 때제주도민이 강제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여기 전체를 비행장으로 썼는데 그런 곳에 시설을 직접 만들고그런데 좀 인력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자세한 정보는 제가 나중에 텍스트로 남겨드릴게요여기가 바로 알뜨르 비행장격납고입니다이곳은 아까 말했던 그 비행장비행장을 만들면서 그 비행기에옛날 그 비행기 잔해가 이렇게 남겨져 있는데추모를 하는 곳인 것 같아요천들이 같이이렇게 추모를 하는 것 같습니다제주도민들이 그 일제시대에 당시에이렇게 강제적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지금 이곳만 있는 게 아니고곳곳에 되게 많은데어떤 데가 허물어진 곳도 있어가지고 이게 제일 대표적으로 이렇게 있고학생들이나 어린 친구들도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도록내용들이 담겨져 있으니까요설문대할망탄생 그리고 산방산의 설화그리고 그 근처의 가볼 만한 곳 중 하나 인알뜨르 비행장에 다크 투어리즘까지이렇게 총 두 곳을 저희가 살펴보았는데요산방산의 전경과 그런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설화까지정말 매력적인 그런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그리고 주변에 이렇게 알뜨르 비행장이라고 있는데이것도 다크투어리즘으로써 제주도의 아픈 역사함께 같이 보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에관광객 여러분께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저는 지금까지 설문대할망의 탄생그리고 산방산의 설화 이야기를 전해 드렸고요2부에서는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관하여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감사합니다
양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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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4
[문화PD] 이성계가 사랑한 절에서 만난 보물 삼총사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4 양주 편
[대본]0. 인트로네 안녕하십니까?여기는 양주 회암사지 앞에 있고요저는 문화PD 김경재 PD라고 합니다!오늘 여기 양주 회암사지에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요?바로 어마무시한 우리나라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오늘 저와 한번 같이 떠나보실까요?1. 양주 회암사지 설명회암사지는 고려 충숙왕 때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입니다.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로 태조 이성계는 왕에서 내려온 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성종과 명종 때 크게 확장되었으나 그 후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져서 현재는 터만 남은 상태입니다.2. 첫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오늘 첫번째 보물을 만나러 가봅시다!첫번째 보물은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입니다.조선전기 왕실에서 건립한 진신사리탑으로* 진신사리탑: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탑보존상태가 좋으며, 왕실불교미술의 여러 요소를 알 수 있는 귀중한 탑입니다.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구축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자! 그럼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3. 두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 쌍사자 석등다음 보물들을 찾으러 가는 길아~~~~ 이거 맞아?야! 산이 꽤 높은데??이런 산 길을 만날 줄 몰랐던 저희는 힘들었지만우리의 아름다운 보물을 찾기 위한 여정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드디어 찾게된 두번째 보물!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 쌍사자 석등입니다.먼저 무학대사탑은 무학대사의 묘탑으로회암사의 주지였던 무학은 이성계의 꿈 풀이를 통해왕이 될 것을 예언한 것과 한양으로 천도와 관련된 설화 등이 유명합니다.쌍사자 석등은 조선 전기 석탑 앞에 건축하는 대표적인 조형 건축물 중 하나로무학대사탑과 함께 조선 전기의 석조 작품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4. 세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을 찾으려는 저희 앞에 다가온 시련, 돌계단이 있었습니다.드디어 돌계단의 시련을 이겨내고 마지막 보물장소에 도착했습니다!마지막 보물은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입니다.회암사터에 서 있었던 비석으로,고려말의 승려인 나옹 화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비석에는 나옹화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 비의 몸돌이 파손되어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실시한 후 비석은 경기도박물관에,비 받침돌인 귀부는 현재장소에 놓여져 있습니다.원형을 알 수 있도록 모조비가 귀부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드디어 양주 회암사지에서 보물찾기 완료!5. 마무리이상으로 양주 회암사지에서우리의 보물을 찾아보았습니다.우리가 경기도에서 찾았던 모든 보물들은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을 할 때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이상으로 문화PD 김경재 PD였습니다.시청해주셔셔 감사합니다.
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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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문화PD] 어플을 활용하여 쉽게 보물을 접하는 방법이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3 수원 편
[대본]인트로안녕하세요, 여기는 수원시이고 저는 문화PD 오정은입니다.본론오늘 소개해드릴 곳은 화서문입니다. 보물 제 403호인 화서문은 조선 후기 정조 시대 때 시설물입니다.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인데요, 화서문의 형태를 보면 문루가 낮고 안의 전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화면전환(화서문 가면서 지침) 더워요..올라가지 않고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얼마 전에 기사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폰을 꺼낸다.터치수원 어플 소개터치수원 어플을 통해 화서문을 구경해볼까요?터치수원은 터치 한번으로 관광 정보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어플입니다. 잠깐 터치수원을 살펴볼까요? 터치수원 첫 화면을 보시면, 로그인 후에 AI 추천 코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테마에 맞는 코스를 직접 추천해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mz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 이색 탈 거리 코스 등 종류별로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추천 방문지 BEST10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top1은 방화수류정이네요! AR/VR, 오디오 가이드까지 함게 제공되고 있으니 편하게 이용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실감나게 즐기는 수원 화성이라는 탭에서는 더 재밌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볼거리, 탈거리,즐길거리들을 따로 소개해주고 있는데요, 한번 쭉 보시면서 원하시는 곳을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원 기념품까지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네요!그럼 이제 터치수원으로 화서문을 직접 살펴볼까요?AR과 VR을 통해 화서문을 실감나게 관찰이 가능하고, 편리한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화면을 360도로 회전이 가능하여 내부, 외부를 자유롭게 감상이 가능합니다.이 곳은 화서문 내부입니다. 와~ 실제랑 거의 차이가 없는 게 보이시나요?화서문의 야경은 직접 보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힐링이 돼서 힘든지도 몰랐네요. 밤에도 너무 아름다웠던 수원 화서문, 이번 주말엔 수원에 가보는 건 어떠세요?아웃트로보물은 모바일로도 실감나게 접근이 가능하다오늘은 이렇게 수원 화서문을 알아봤는데요,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
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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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3
[문화PD] 얼굴 크기만 2m? 파주 거대 불상에 얽힌 출생의 비밀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2 파주 편
[대본]안녕하세요,여기는경기도파주고,저는문화PD한서희입니다.경기도구석구석보물찾기용암사편이곳에숨겨진보물을함께찾으러가볼까요?용암사는고려시대전기에만들어진사찰인데요기도를드리는공간인대웅전안삼존불상이오늘의보물일까요?범종에숨겨진비밀이있을까요?아님계단을메우고있는꼬마좌불상이보물일까요?정답은바로계단끝에있습니다!짠!경기도파주시용암사의주인공!보물제93호로지정된마애이불입상입니다.전체길이만19.85m를자랑하는거대한두불상은천연암벽에새겨신체비율이맞지않아더욱우람하게보이는데요.둥근갓을쓰고연꽃을쥔왼쪽불상이원립불,4각형갓을쓰고합장하는오른쪽불상이방립불입니다.왼쪽불상은남상(男像),오른쪽불상은여상(女像)이라는구전이전해진다고합니다.이불상에신묘한전설이있다고하는데요.고려13대임금선종은대를이을자식이없어고민이많았다고해요.이때셋째부인인원신궁주의꿈에도승둘이나타나우리는장지산남쪽기슭바위틈에사는사람인데,배가고프니먹을것을달라고했다고해요.꿈에서깬궁주는꿈이숭숭해선종에게전했고,그얘기를들은선종이장지산바위에마애이불을새겨불공을드렸더니,그해에궁주가왕자한산후를낳았다고합니다아참,이곳의위치에도특별한사연이있다는사실,알고계셨나요?조선시대,한양과의주를잇는의주대로는중국국경을넘는유명한길이었다고해요.의연암박지원도,한국최초천주교신부김대건도모두이길을걸어국경을넘었답니다.이거대한불석은먼길을오가는사람들에게이정표역할을했다고하네요.조선의주대로78번도로는쌍미륵길이라는이름으로지금까지이어지고있답니다.웅장하고거대한보물을가지고있는이곳용암사에서보물같이소중한시간을보내는건어떨까요?이상문화PD한서희였습니다.다음보물찾기는수원에서해볼까요?
한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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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7
[문화PD] 천 년 된 보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1 하남 편
[대본] 천년 된 보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1 하남 편 경기도에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 국보와 보물들을 찾아 그에 담긴 역사를 알아본다. 경기도의 다양한 지역별로 찾아보는 구석구석 보물찾기 여행. 여기는 경기도 하남이고요 저는 문화PD 강산입니다 경기도 하남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하남 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불을 찾아라!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서하남로588번길 125 선법사 마애 : 석벽에 글자나 그림, 또는 불상 새겼다는 뜻 약사여래 :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보살. 부처. 좌상 : 앉아 있는 모양의 불상. 그렇다면! 하남 교산동에 있는 돌에 새겨진 앉아있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오늘의 보물이겠네요!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 Rock-carved Seated Bhaisajyaguru Buddha in Gyosan-dong, Hanam 드디어 오늘의 보물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보물은! 언제? 어떻게? 왜? 보물이 되었을까요? 전문가를 만나보시죠!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박경이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릴 보물은 하남시에 있는 선법사라는 작은 절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 보물입니다 고려시대 때에 마애여래상들이 보통 얼굴 부분은 정교한데 반에 신체 부위나 옷 부분은 생략 또는 정교함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선법사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만큼은 얼굴, 신체, 좌대 모든부분을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어느 약사여래좌상보다 뛰어남을 인정받아서 1989년도에 보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와~ 그렇군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보물이 제 눈앞에 있다는 게 놀라운데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보존되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거겠죠? 그럼 앞으로 다가올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잘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하남 편은 여기서 마치고요! 다음 보물 찾기는 경기도 파주에서 해볼까요? 우리가 지금 보물을 만났듯이 천년 뒤에도 누군가가 만날 수 있기를..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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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네 번째 이야기 '시인 윤동주'
[대본]서시, 별 헤는 밤 등의 시로 유명한 윤동주 그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오늘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윤동주의 어린시절] 초등학교 시절부터 윤동주는 문학에 관심과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소학교 때부터 친구 들과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윤동주의 대학시절] 1938년, 윤동주는 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가 문과에 입학해 열심히 학업에 입하게 됩니다.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윤동주는 현재 잘 알려져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내려고 준비하게 됩니다.그러나, 1941년에 조선어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우리 말로 쓰여진 시집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윤동주는 시집 발간을 포기하게 됩니다.[윤동주의 일본유학]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창씨개명이 필수 였습니다.창씨개명 전에 그는 참회록이라는 시를 쓰게 됩니다. 창씨개명으로 인한 고뇌와 부 끄러움을 써내려간 시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것이 죠.[윤동주의 순국]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동주는,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윤동주 주위를 검열하던 일본 경찰들이 윤동주를 조선 독립 운동 선동죄로 체포하였고, 조선 유학생들을 모아 독립을 선동했다는 죄명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고 맙니다.그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함께 잡혀간 고종사촌 송몽규에 따르면, 윤동주가 옥중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 다.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나,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의혹 이 있습니다.광복 후, 유족과 지인들은 윤동주의 시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으로 시집 을 발간하게 됩니다.윤동주의 독립운동은, 총과 폭탄으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끝까지 한글 시를 지켜내고자 한 저항 시인이었습니다.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2012년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문학관에서는 그의 업적과 작품들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윤동주 문학관 옆 길을 통해 청운공원 주 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갈 수 있는데요.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하숙집에서 가까 운 청운공원 주변을 거닐며 서시, 별헤는 밤 등의 시를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 낭독으로 오늘 영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양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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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세 번째 이야기 '백범 김구'
[대본]김구선생의발자취는백범김구기념관에서찾을수있었다.김구선생의호백범에서도그의조국독립을향한강한의지를엿볼수있다.백범은평범한사람들이라는뜻으로,평범한사람들이곧우리의민중이고,민중은곧애국심을가지고조국독립의필요성을깨쳐야한다는의미이다.1896년3월,황해도치하포의주막에서김구는일본군중위쓰치다조스케를발견하였다.김구는그가명성황후를시해한범인일것같다는생각이들자,명성황후를시해한원수를갚고나라의수치를씻는다는우국의일념으로그를처단하였다.1910년,김구는대표적인항일민족단체인신민회에서,조국의독립운동기지건설을위한비밀회합에황해도지역자금모금책임자로참여하였다.1919년,김구는상하이로망명해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경무국장에임명되었다.그는독립운동가들을보호하고만세운동을통해독립의지를전세계에알렸다.1930년,김구는일제요인암살과식민통치기구의파괴를위한특무대한인애국단을조직했다.일제의탄압속에서도그는무장투쟁을이어가며강한독립의지를내비쳤다.1940년,김구는임시정부의국군,한국광복군을창설하였다.광복군이대일항전을전개하고국내진입작전을시도한것은조국의독립과민족의해방을자주적으로쟁취하려는한민족의자주독립에대한의지를상징하는것이었다.그리고1945년,광복군의국내진공작전직전일본의항복으로한국이광복을맞았지만,진정한대한독립을이루지못해마냥기뻐하지못한김구였다.그리고지금,우리가할수있는것.백범김구선생을기억하는것이다.우리는김구선생을기억합니다.
박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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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두 번째 이야기 '도산 안창호'
[대본][타이틀]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평생을 몸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안창호 선생의 삶이 보여준 정신을 본받아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자 도산공원이 조성되었고,공원 내부에 도산 안창호 기념관이 건립 되었다.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도산공원을 거닐며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그가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한다.독립, 그 이상의 미래를 꿈꾸다 - 도산 안창호[본문]1878년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태어났다.그가 열여섯 살 때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평양에서 전투가 벌어져 주민들이 피난하고 가옥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때 도산은 우리 민족의 불행이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도산은 19세 때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였고,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첫 연설을 함으로써 탁월한 웅변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도산이 독자적인 사회세력을 결집하여 주도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미주의 교민사회에서 공립협회를 만든 다음부터였다.1902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그곳 동포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교민지도에 나서게 된다.그리하여 초창기 미국 교민사회에서 대중적 지도자로서 성장해 공립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공립협회는 2년 미만의 단기간에 600명의 회원을 모으고,3층 건물을 회관으로 가졌으며, 매월 두 차례 공립신보를 발간해 매우 힘있는 단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도산이 미국에 있던 5년 동안 국내정세는 날로 위기가 깊어지고 있었다.도산은 본격적인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초 귀국 길에 올랐다.이 때 그의 가슴 속에는 이미 국내에서 전개할 구국운동의 새로운 목표와 방법론, 조직형태가 그려져 있었다.귀국 즉시 도산은 국내 계몽운동의 핵심인물들을 찾았다.그는 새로운 구상을 설명하면서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일에 착수하고,한말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지휘했던 신민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도산은 신민회를 중심으로 교육ㆍ언론ㆍ산업 등 여러 부문에 걸쳐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게 하였다.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약 3년간 그가 주도했던 신민회운동은비록 나라를 지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일제하의 독립운동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1910년 5월 통합 교민단체로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이는 해외의 전교민이 도산을 대표자로 하여 하나의 조직 속에 결집한 셈이었다.국내가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황에서 도산은 해외에 사는 교민들이 현실적인 독립 운동의 기반이라고 생각하여 해외 한인의 총단결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여겼다.해외 한인의 대동단결이라는 과제를 일단 해결한 도산은 다음 해인 1913년 흥사단을 조직하였다.흥사단은 민족운동의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훈련단체로 미국에 본부를 두었다.1918년 국제 정세 속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었다.이듬해 3ㆍ1운동 소식을 접한 도산은 독립운동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고,국민회의 대표 자격으로 중국에 건너갔다.도산은 국무총리 대리를 겸하면서, 임시정부의 실체를 갖추는 데 전력을 쏟았다.국민회에서 가져온 자금으로 정부청사를 얻고 각료로 추대된 각지의 인물들을 불러 모았으며 독립신문 발간과 독립운동 방략 작성을 주도했다.임정을 권위 있는 최고 지도기관으로 만들어 장기적인 독립운동에 대비하고자서울의 임시정부와의 통합을 추진하였고, 노력 끝에 결국 통합을 이루어냈다.이승만 대통령까지 합류함으로써, 임정은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추었지만임시정부 내 갈등이 심각해졌고, 임정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임정을 사퇴하고 국민대표회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1926년 5월 말 다시 상해로 간 도산은 좌우 합작의 대독립당운동에 앞장섰다.산발적으로 논의되는 데 그치고 있던 좌우합작문제를 본격적인 실천운동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도산이었다.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도산은 기회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여 반일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윤봉길 의거의 여파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끌려오게 되었다.도산은 4년 반에 걸친 두 차례의 감옥 생활 끝에 얻은 병이 악화되어1938년 3월 10일 만 59년 4개월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옥중심문에서 일본 관헌에게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독립 운동가이자 겨레의 큰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무실역행을 몸소 실천한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그 위대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송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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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첫 번째 이야기 '안중근 의사'
[대본]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첫 번째 발걸음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입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남산타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번 남산에 올라갈 때, 한 번쯤 지나쳤던 곳인데 이곳을 직접 들어와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1층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초대 통감 이토를 하얼빈 역에서 제거한 의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뮤지컬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재판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요 이번에 제가 다녀온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더 관심 있게 보고 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는 사실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면 하얼빈 의거가 크게 각인 되어서 안중근 의사는 무장독립 투쟁을 하셨던 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국내 정세가 혼잡하고 외세의 침입과 이권침탈이 잦아진 시대적 배경에서 동학농민운동에도 함께 하셨고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애국계몽을 위한 교육 운동에도 힘쓰셨던 일들이 1층 전시관에 자세하게 써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에 분개하고 이 내용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의 모습으로 다시 안중근 의사를 볼 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가문에서는 무려 15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고 하는 데요 그만큼 가족에게 본이 되는 부모님과 그 뜻을 이어나가는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을 가득 배출해낸 이유인 것 같아요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하얼빈 의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얼빈 의거 상황을 기차의 형상으로 재현한 곳이 있었는데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현재 심경과 각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이토를 기다리기 위해 하얼빈 역 찻집에 있소 이토를 알아보고 일을 거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오 그러나 기회는 오직 이때뿐 신문에서 전하길 아침 9시쯤 열차가 여기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니 곧 그를 만나게 될 것 이오 반드시 이 거사를 성공시켜 곧 그를 만나게 될 것 이오 이 머나먼 외국 땅에서 당당하게 대한 만세를 외칠 것이오 아... 열차가 도착하고 있군 이만 가보겠소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의거가 어떻게 계획되고, 진행되었는지 당시 그곳의 상황은 어땠는지 의거 장면이 한 켠에 재현되어 있었고 왜 이토 히로부미를 없애야 하는 지 그에 대한 히스토리가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에서 사용하셨던 권총과 총알도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따라가면 이어지는 곳은 자주독립을 향한 그의 재판 장면이 나타납니다 벽의 버튼을 누르면 재판 장면으로 꾸며진 세트장에서 조명과 함께 목소리가 나오면서 마치 연극처럼 그 상황이 재현됩니다 저도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방청석에 앉아봤는데요 자리에서는 앞에 있는 화면을 통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이유이자 그의 15가지 죄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7. 철도, 광산과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를 속인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태황제를 시해한 죄 이렇게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의 죄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2월 13일 옥중에서 집필을 시작해서 다음 해 3월 15일까지 탈고한 자서전인데요 안중근의 탄생부터 순국 전까지의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아오신 삶에 대해 기술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관에서는 체험과 퀴즈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오늘 전시를 어떻게 봤는지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저도 문제를 풀어봤는데 몇 문제는.... 틀렸더라고요 더 열심히 볼 걸 그랬나봐요 그러면서 또 많은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이렇게 안중근 의사의 발걸음을 서울에서 함께 따라가보았습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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