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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그러나 치유해야 할 ‘기억’

문화포털 기자단 2015-04-20
잊지 말아야 할, 그러나 치유해야 할 ‘기억’

잊지 말아야 할, 그러나 치유해야 할 ‘기억’
-서울문화재단 세월호 1주기 특별 기획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

 

 

 

<Deluge : 물의 기억> 공연 포스터 ⓒ 남산예술센터

 


‘물’에 대한 기억을 무대에 올린 공연이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세월호 1주기 특별 기획으로 제작한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이라는 공연입니다. 1년 전, 우리는 ‘물’이 모인 거대한 그곳에서 수많은 안타까운 생명을 잃어야만 했고, 그곳을 향해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으며, 아직까지 우리는 그곳에 대한 기억을 쓰라린 아픔으로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그 ‘물’이라는 것은, 우리 신체의 70퍼센트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며, 우리는 그것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명을 삼켜버린 ‘물’을 통해 우리 개개인은 생명을 이룩해가고 있습니다. 생명과 죽음 사이, ‘물’에 대한 모순적인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상처는 여전히 곪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 자연에 대한 재현 : 촉각적인 공연

 


<Deluge : 물의 기억> 공연 사진 ⓒ 남산예술센터

 

 

여기, 무대라는 가장 인위적인 공간에서, 물의 자연성을 표현하는 공연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무대라는 공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재에 대한 재현에 몰입하게 하기 위하여, 자연성을 배제하고, 오브제를 통하여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을 택하는 공간입니다. 자연광 대신 조명을, 생활 소음 대신 배경음과 효과음을, 꽃과 나무 등의 자연물 대신 그것들을 대체할 만한 제각각의 오브제들을 이용함으로써, 재현을 위하여 가장 인위적인 공간을 꾸려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본 공연은 이러한 인위적인 공간에서 가장 자연적인 물질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물을 전혀 등장시키지 않고, 물에 대한 기억을 표현해가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촉각’입니다. 자욱한 안개효과는 기체와 수체의 경계에 서있는 자연의 미묘한 감각을 재현해냅니다. 게다가 배경음 혹은 효과음은 멜로디라는 음조를 거의 배제한 타악기의 리듬으로 꾸려집니다. 가장 원시적인 악기, 타악기를 통하여 이 시공간을 태초적인 자연의 시공간으로 회귀하게 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극장 전체를 울리는 강렬한 진동들이 마치 우리의 심장박동 소리와 맞물려, 우리 삶에 대한 역동적인 생명력을 촉구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촉각을 향한 강렬한 자극들이 모여, 대자연의 거대한 힘, 대홍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 ‘날 것’이 가득한 공연

 


<Deluge : 물의 기억> 공연 사진 ⓒ 남산예술센터

 

 

공연은 ‘날 것’들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남산예술센터 날 것 그대로의 무대였습니다. 본 공연에서 압도적으로 사용되는 오브제 8개의 기둥을 제외한 나머지의 공간은, 극장 무대의 헐벗은 ‘뼈대’ 그 자체였습니다. 더불어 무대 위의 퍼포머(performer)들은 정교한 합으로 이루어진 무용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자연적인 ‘몸짓’을 보여줍니다. 또한, 배경음과 효과음 사이에서 아우성치는 퍼포머들의 ‘날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그들의 몸짓과 아우성이, 당위성에 의해 잘 다듬어진 일련의 과정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동물적 본능이 찰나적으로 발현되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약속과 가공이 가득한 공간 무대에서, 날 것 그대로를 발현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연예술이라는 장르만이 가진 시공간적 아우라(aura)를 발현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날 것의 빈약함을 예상했던 저의 공허한 마음이, 날 것들이 풍기는 아우라로 인해 ‘가득 찬’ 전율로 바뀌었습니다.

 

 

* Deluge(대홍수) : 물의 기억

 


<Deluge : 물의 기억> 공연 사진 ⓒ 남산예술센터

 

 

70여 분의 시간 동안, 극장이라는 공간을 ‘부유(浮游)’하였습니다. 물 표면에서의 표류가 아니라, 입자 밀도가 높은, 가득하고 아득한 물속에서의 떠다님이었습니다. 물의  그들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에 대한 기억을 태곳적 시절로 되돌려 놓습니다. 1년 전 그날의 충격으로 물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키고 있던 우리였습니다. 물에는 이념도, 사상도, 이데올로기도,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물은 그저 물입니다. 자연입니다. 물에 대한 우리 태초의 기억은 대자연으로서의 경외심 혹은 타들어가는 목을 달게 적셔주는 고마움 등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날의 아픔과 더불어 이후의 불명확한 사건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식은 ‘비현실적’인 것에 물들어져 가고 있었고, 실체와 가상의 경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부유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기억의 상처는 많은 기억을 곡해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픔은 ‘잊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많은 것을 잃는 꿈을 꾸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벗이여, 삶과 죽음이 우리 뒤에 있다.
-Judith Wright의 시 <대홍수(Deluge)>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내줄 수 있을까?”

공연은 이 문제를 화두로 던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게 아픈 우리를 향하여, 그들을 어떻게 보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사유하려는 것이 이 공연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이 큰 상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절대 극복하지 못할 차원의 고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은 이들의 가슴을 처참하게 찢어버리는 이 깊은 상처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상처를 내버려두다간, 더욱 극심한 고통이 이어져, 이 상처의 원인을 아예 ‘제거’하고자 몸부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4월 16일, 세월호 1주기의 추모 의식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의 상처 자체를 잊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닐까요? 망자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영원’해야 할 것이고, ‘온전’해야 할 것입니다.

 

 

* 공연 정보
- 공연명 : 서울문화재단 세월호 1주기 특별기획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
- 기간 : 2015년 4월 16일 (목)~25일 (토)
- 공연시간/일시 : 70분
  1) 수, 목, 금 오후 8시(월, 화 공연 없음)
  2) 토, 일 오후 3시
- 관람요금 : 15,000원(만 13세(중학생) 이상 관람가 / 장애인, 국가유공자, 의사상자, 만 65세 이상 7,500원)
- 장소 : 서울 남산예술센터
- 찾아가기 : 대중교통 지하철 4호선 명동역 2번, 10번 출구
- 홈페이지 : http://www.nsartscenter.or.kr

 

* 관련 정보
- 304 낭독회 : 2015. 4. 25. 오후 4시 16분 / 연희문학창작촌 / http://304recital.tumblr.com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장기영(글) / 장수영(편집)